작업실의 자코메티
제임스 로드 지음, 오귀원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지우기>를 읽는 내내 짙은 의구심에 휩싸였다. 작가는 화가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물론 소설가가 미술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 이상 실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의 공감은 얻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 또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재미만 있으면 되니까. 그럼에도 계속 드는 의문은 하루키의 글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얄팍한 작가의 분신에 머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곧 화가, 사업가, 유부녀가 다채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본인의 독백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히루키 소설의 대화는 구어체라기 보다는 문어체에 가까우며 실제 오고가는 말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머릿속 생각을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이렇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토대에 약간의 지적, 성적, 음악적 허세를 뿌려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만 진짜에게 걸리면 뼈도 못추릴 가짜에 불과하다, 라는 깨달음이 오랜 하루키 팬인 내 가슴속에서 번쩍하고 일었다.

 

<작업실의 자코메티>는 리얼이다. 하루키가 만들어낸 가짜 미술가가 아니라 진짜 조각가가 모델을 정해 조금씩 조금씩 완성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예술가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직접 모델이 된 당사자의 입을 통해 토해내고 있다. 하루키가 소설에서 묘사하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의 계시(?) 위를 받아 신들린듯 얼렁뚱땅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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