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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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미용실에 들렀다 하루키의 신간을 발견했다. 만화책이나 잡지라면 이해가 가지만 소설이라니. 아마도 하도 유행하니 비치용으로 둔 것일지도. 일요일이라 평소보다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 읽기 시작했는데 한 30페이지쯤 진도가 나갔을 때 내 차례가 되었다.

 

순간 갈등에 빠졌다. 계속 읽을까 말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이발을 하면서도 내 시선은 자꾸만 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계산을 하면서 사장에게 조심스레 집에 빌려가서 읽고 돌려주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굴 수는 없었던지 마지못해 승낙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에 커텐을 치고 의자에 앉아 다시 처음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독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4시간쯤. 중간에 한번 화장실 가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시간을 포함해서다. 저녁 늦게 책을 돌려주러가면서 답례로 캔 맥주 세개를 건냈다. 주인은 빌려줄 때와 마찬가지로 뜨아한 표정이었다. 그냥 책만 줄걸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책 제목은.

 

<기사단장 죽이기>는 전형적인 하루키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언제나처럼 관계의 미묘함이며 적절한 색스신도 빼놓치 않았다. 스스로는 일본 문학 전통에서 멀리 벗어나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러질 못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나"이며 벌어지는 일이라곤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망상이다. 이번엔 남편과 아내. 거기에 색다르게 화가라는 직업이 덧칠되어 있다. 읽고나면 이게 뭐지라고 남는 것이 없다는 점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 곧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감기는 것을 막아주는 능력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뭔가 중요한 스토리가 펼쳐질 듯 펼쳐질 듯 한 아슬아슬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단연코 문장이다. 하루키의 형식주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결정적인 약점이다. 부담없이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소설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의 고민이기도 하다. 하루키가 사기꾼인지 작가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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