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은 명실상부 출판강국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인간도 화수분처럼 마르질 않는다. 아사히 신문 1면의 광고를 늘 책에 양보하는 건 그냥 허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를 찌르는 작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등장하여 독자들을 휘어잡는다. 기타무라 가오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단순히 미스테리 작가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하다. 폭넓은 일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같지 않은 일을 해결해나간다. 물론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늘을 나는 말>은 이른바 엔시 씨와 나 시리즈의 출발을 알리는 책이다. 만담꾼과 여대생이 짝을 이뤄 독특한 문제를 차근차근 무리없이 풀어나간다. 얼핏 읽으면 에게,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이완되면서 편안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모든 고민의 원인은 감정이며 그 감정을 사실은 자신이 억압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오리베의 망령>에서 나온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박학다식한 노학자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어렸을 적 꾼 악몽에서 여저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이 괴로움을 엔시 씨와 나는 충분한 대화로 실타레를 벗기듯 하나씩 풀어헤친다. 그 과정이 너무도 고혹적이고 탐할만큼 아름다워 짬짬이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아, 이런 소설을 쓰는 일본 문학의 저변은 얼마나 넓고 깊은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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