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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 아웃케이스 없음
강우석 감독, 차승원 외 출연 / CJ엔터테인먼트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지도 보기를 즐긴다.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도 남들이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동안 나는 대형 맵을 보며 이곳저곳을 마음속으로 돌아다닌다. 일단 내가 살아왔던 곳부터 차례차례 훑는다. 다행히(?) 서울 토박이라 수도권 지도 속에 다 표시가 되어 있다.
고지도도 좋아한다. 대학다닐 때는 옛날 지도에 빠져 전시회에 가기도 하고 카피본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딛고 있는 땅에 예전 조상들도 거닐었더는 것이 느껴져 살짝 가슴이 뭉킁해지기도 한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잘 만든 영화다. 흔히 위인하면 떠올리는 장군이나 왕이 아니라 지도쟁이를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분이 엄격한 사회에서도 자기 일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장인의 삶을 재현한 것이 더욱 돋보인다. 김정호 역을 맡은 차승원의 연기도 좋았다. 키가 워낙 크고 서구적인 외모라 잘 어울릴까 걱정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흥선대원군으로 나온 유중상도 우리가 연상하는 꾀죄죄하고 음흉한 노인네가 아닌 늠름한 모습으로 나와 신선했다. 이밖에 딸로 분한 남지현이나 제자인 김인권도 톡톡 튀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역시 풍경이 압권이었다. 정말 씨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는데 거의 다 실제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백두산 천지는 실물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그 장면만큼은 특수촬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에 왜 망한거냐? 딱 봐도 어마어마한 돈을 들인 것 같은데 관객은 고작 97만 명. 최소 5백만 명은 넘어야 될 영화가 백만명도 차지 않았다니. 우선 감독에 대한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 강우석이라는 타이틀이 도리어 역효과를 낳았다는 뚯이다. 한 때 잘 나갔지만 이제는 감각이 참신하지 않은 느낌에 지레 발길을 돌린 셈이다. 이는 배우들에 대한 선입견에도 영향을 끼쳤다. 솔직하게 말해 차승원이나 유준상은 티켓 파워가 약하다. 뭔가 등장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배우가 한 명쯤은 있어야 했다. 만약 흥선대원군을 김윤식이 맡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삼시세끼를 연상시키는 대사는 옥에 티 정도가 아니라 실소가 나올 실수였다. 당연히 빼버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고산자>는 수작이다. 워낙 가까운 근대라 역사왜곡논란도 있지만 시대에 맞서는 한 인물의 삶을 이만큼 살리기도 힘들다. 추석에 티브이에서 방영해준다니 이번에는 제대로 명예회복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