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은 음악으로 덮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가, 정직하게 말해 시간을 떼우려 극장에 들러 대충 아무 거나 골라 보았는데 인생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두번째 경험이었다. 첫번째 행운은 <빅>이었다.

 

 

자동차와 마약이 등장하니 당연히 논스톱 액션이다. 첫 장면부터 광속으로 질주한다. 게다가 은행털이가 주요 내용이니 박진감은 덤이다. 만약 영화 내내 이런 식으로 난장판을 쳤다면 굳이 귀한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유머에 슬픔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내내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의아한 건 이어폰을 줄곧 착용하고 있다는 거다. 줄기차게 음악을 들으며 임무를 수행한다. 이유는 곧 밝혀진다. 어렸을 적 당한 자동차 사고의 휴유증으로 지독한 이명증상을 앓고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삐이이 하는 전자파 소리가 하루종일 귓가를 맴도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불행하게도 이 병에는 즉각적인 치료제도 없다. 그저 신경을 이완하고 쉬면서 누그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소음으로 덮어버리던지. 베이비는 두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른바 록과 팝 클래식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이쯤되면 글쓴이가 왜 이토록 베이비에 감정이입을 하는지 알 것이다. 그렇다. 나도 이명이 심했다. 이비인후과에 가도 뚜렷한 처방이 없었다. 이 병이 완화된 것은 서울을 벗어나 살면서부터다. 돈이 없어 서울에서 밀려나 인천 변두리 산골 아래 빌라에 터를 잡았다. 석달동안 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주변이 조용하니 증세는 더욱 심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던 어느날 감쪽같이 소음이 사라지는 뜻밖의 일을 겪었다. 치유가 된 것이다. 서울이 내뿜는 온갖 공해와 자동차 소리, 그리고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지칠대로 지친 귀가 마지막 오물을 토해내고 원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서울을 들락거렸는데 갔다 온 날은 어김없이 다시 이명이 시작되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나는 대도시에서 콘크리트 상자에 갇혀 일하면 안되는 운명이구나.

 

 

베이비처럼 자동차를 몰며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늘 이어폰을 귀에 끼고 산다. 특히 외출을 할 때에는 라디오 기능이 되는 엠피쓰리의 클래식 에프엠에 주파수를 맞추고 작게라도 음악을 틀어놓는다. 주변의 잡다한 생활소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다. 물론 서울에 가는 건 극도로 꺼리면서. 아마도 감독 또한 비슷한 징후를 겪고 있으리라. 주인공은 디렉터의 영혼을 담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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