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 ㅣ 대원 애니메이션 아트북 8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최윤선 옮김 / 대원키즈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베스트 쓰리를 꼽으라면 단연코 <너구리 대작전>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화는 우선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말해 하야오의 만화는 재미보다는 감동이 앞선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곳곳에 장치되어 있어 그림은 아름답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인 어린 소녀가 중노동을 선뜻 받아들이고 숙명처럼 견디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어떤 상황이 바뀌어 도저히 저항하기 힘들 때는 적응을 넘어 순응하는 일본인들의 정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안부(실제로는 성노예) 문제에 대해 어떻게해서든 회피하려는 마음의 밑바탕에도 이런 감정이 깔려 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반면 <너구리 대작전>은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낸다. 하야오의 장기는 현실 문제도 빠트리지 않는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인간에 대항해 싸운다는 설정은 사실 너구리를 원주민으로 바꿔도 무방한 생존의 문제다. 만약 인간과 너구리 두 세력중 한쪽이 이기는 것으로 끝을 냈다면 명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타협을 통해 살아남은 너구리들이 인간의 못된 습성을 익혀 타락해가는 내용이 첨가되었기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나도 저럴 수 있겠구나?
그럼에도 아쉽다. 어쩔 수 없이 지배세력 내지는 큰 힘에 굴복하는 너구리의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만화속에서나마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하야오의 나약함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