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홀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태어나서 룸살롱이라는 곳에 딱 두 번 가봤다. 그것도 결혼하고 나서. 사실은 결혼 전에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가질 않았다. 직장에서 일할 무렵 퇴근 후 1차가 끝나자 한 동료가 좋은 곳이 있는데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가자는 것 같았다. 내키지 않아서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아무도 나보고 룸살롱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더군. 본의 아니게 나는 이상한 놈으로 찍혀버렸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왜 갔냐구? 이야기를 하자면 길고도 복잡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좀 이상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그렇다고 불법적인 데는 아니다), 처음에는 심부름정도의 일을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날은 내 노고를 위로해 주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자리였다. 어찌 내가 빠질 수 있겠는가? 아무튼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신촌 근처에 있는 룸살롱이었는데, 딱 보기에도 일급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좋은 데로 안내할 것이지. 자리에 앉자마자 여인네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로였다. 나중에는 의례 조금 빠지는 여인네들을 처음에 들여보낸다는 것을 알았다(여인의 외모나 신체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하여간 우리 대장은 이미 여러 번 이런 곳에 와보아서인지 능숙하게 여인네들을 거르더니 파트너까지 척척 정해주었다. 물론 가장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자는 자기가 차지하고 그 다음이다 싶은 여자를 내게 배정해주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첫 번째 룸살롱 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 옆에 앉아있던 여인의 손도 잡아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여의도에 있는 룸살롱이었는데, 누구를 꼬시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는 선배를 데리고 오기 위해 일종의 로비를 한 것이다. 여기서는 내 나름대로 대범하게 놀았는데, 물론 2차를 가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손의 크기를 맞추어본다며 손을 잡아본 정도다.

이후 나는 룸살롱이라는 곳을 가보지 못했다. 아쉽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룸살롱은 비정상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자리에 여자가 나오는 것부터가 그렇다. 도무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존대하며 같이 술을 마시자니 어딘가 어색하고 그렇다고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밴드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불러야 오는 것이지만.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핏 보면 멋있어 보이지만, 그 상황에서 제 정신으로 음악을 감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먹고 마시고는 소리를 토해내는 것에 불과하다. 라이브 밴드가 아깝다.

문제는 이러한 룸살롱 문화가 여과 없이 소개되고 있다는 데 있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룸살롱인 듯싶은 술자리가 버젓이 나온다. 그만큼 보편화된 탓인가? 접대가 되었건 다른 무엇이 되었건 오늘밤 룸살롱에 다녀온 남편분들은 부인에게 고해성사를 하기 바란다.

나의 경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내에게 심각하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룸살롱을 다니면서 직장에서 출세하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룸살롱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느냐. 아내의 대답은 후자였다. 당연히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무튼 룸살롱은 이상한 곳이다. 무엇인가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뛰어나고 여인네들이 예쁘다고 해도 추잡한 기운이 감돈다. 룸살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인간은 그 혼돈의 장소에 휘말려 들어가게 마련이다. 마치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야수로 변하는 아저씨들처럼 말이다. 인간은 홀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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