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우리 아버지는 영화를 그다지 즐기는 분이 아니셨다. 가족끼리 영화관에 간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반면 어머니는 영화광이셨는데, 어릴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을 자주 찾곤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피는 어머니를 물려받은 것 같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극장에 갔을 때 일이다. 가족 모두가 영화관에 가다니 드문 일이었다. 중앙극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제목은 <챔프>였다. 아버지를 복서로 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

소년은 눈물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영화상영 내내 극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버지. 당연히 울지 않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아마도 졸음에 못 이겨 나온 하품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극장을 다녀오면 어머니는 한바탕 평론을 하신다. 연기가 어떻고 의상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영화보다 더욱 극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묘사하곤 하신다. 그럴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다. 한참을 이야기에 몰두하던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갑자기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당신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예의상 물어본 것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머니는 이러저러한 장면이 감동적이었다고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으셨다. 그날 저녁 우리는 들었다. 아버지가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는지를.

나는 아이가 울고불고하는 장면에서는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더란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거 왜 있잖아. 아이를 부자 집에 맡겨놓고 놀이동산에서 시간을 때우던 남자주인공이 사격경품으로 큰 인형을 상으로 받잖아. 그 인형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는데 이미 아이는 근사한 선물을 받았더구만. 차안에 타고 있던 그 남자 슬그머니 차 밖으로 곰인형을 버리던데, 그만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 참 나이 들어 주책이지 뭐야. 영화관에서 눈물을 다 흘리고.”

안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와 내 동생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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