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폭탄을 안고 사는 사나이

 

 

가슴에 살며시 손을 얹어본다. 미세한 울림이 전해진다. 휴우 오늘은 그래도 컨디션이 괜찮군. 아침에 일어나면 늘 하는 버릇이다. 아직도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아침밥을 먹고 일터로 나간다. 하늘은 뿌옇다. 다 공해 탓이다. 언제까지 저런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지. 그래도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다. 앞으로 조심하셔야 하겠지만 위험한 고비는 넘었습니다. 항상 체크하시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심한 운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한 달 전 나는 사경을 헤매지 않았냐? 막말로 죽다 살아 난거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약한 나는 가슴에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몇 번인가의 수술 끝에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의사말처럼 조심은 해야 되겠지만.

버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 탈 때이다. 출근길이다.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할 수 없다. 정글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다. 다 불황 탓이다. 너도 나도 차를 집에 두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 덕에 예전에는 앉아갈 수 있던 지하철도 서서가는 신세가 되었다. 힘들다. 오늘따라 직통도 오지 않는다. 계속 연착이더니 급기야 불통이다. 완행을 타야한다. 이미 출근시간에 맞추기는 틀렸다. 휴대폰을 찾는 내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다. 어디선가 약하지만 강력한 울림이 들린다.

완행전철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사람들이 내뿜는 독한 말이 오염물질이 되어 서로의 가슴을 파고든다. 숨이 찬다. 내리고 싶다. 하지만 내릴 수가 없다. 이리저리 밀리는 와중에 겨우 자리가 하나 생겼다. 나는 앉는다.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다.

가만히 고개를 수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들린다. 내 심장소리가. 그것도 힘차게. 위험하다. 탈출하라. 계속 SOS를 친다. 순간 딱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머리에서 나는 소리다. 이런 고얀놈 노인네가 앞에 서있는데 조는 척 하다니.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판이다. ...앉으...세요. 나는 일어선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쇼하고 있네. 옆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내뱉는다. 대항할 기운도 없다.

어디 손잡이라도 잡아야 할 텐데. 쿵쾅쿵쾅 가슴은 계속 요동친다. 어디선가 째깍째깍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내 가슴에 폭탄이 있단 말이에요. 다들 피하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미 나는 말을 잃었다. 구역질만 나올 뿐이다.

헉헉헉 여기가 어디지? 지옥의 문 앞인가? 의식이 흐려진다. 내가 이렇게 죽다니? 말도 안돼. 주변 사람들은 이제 아예 대놓고 미친놈 취급이다. 저 아저씨 왜 그래? 아니 뭐야, 저리 안가? 헉헉헉 그게 아니구요? 제발 좀 나가게 해주세요. 죽겠어요. 헉헉헉 내 심장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5. 4. 3. 2. ~~~ 1

아침 83542초 시청역에서 숨을 거둔다. 지금 나는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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