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

 

자 다들 타셨죠. 그럼 출발합니다.” 오랜만의 나들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탈출하는 순간. 다들 즐거운 표정이다. 비록 경품행사에 당첨되어 가는 여행이지만 어쨌든 여행은 여행이다. 피곤하다며 가지 않으려던 아내도 행복한 표정이다. ‘그럼 그렇지.’

고속철도는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아니 기차 안에 있는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그저 모니터에 표시되어 있는 속도표시를 보고 알 뿐이다.

이제 우리 기차는 터널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약간의 소음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약간이라구? 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내 귀청을 때린다. “으으윽신음소리가 가늘게 배어나온다. “헉헉헉땀이 흥건하게 젖은 내 얼굴을 아내는 의아스럽게 바라본다.

왜 그래요?”

왜 그래요라니 지금 이 소리 들리지 않아?”

아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객실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제 우리 열차는 광명을 지나 대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최고속도를 낼 예정이오니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창밖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슈유우응” “어어엇내 뒷자리의 할아버지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 ... .”

말은 문장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역무원, 역무원

역무원은 다급한 기색 없이 다가와 할아버지의 안색을 살핀다. 역무원과 함께 온 의사인 듯한 사람이 혈압과 심장박동수를 체크한다.

이상 없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화가 버럭 난다.

침착하십시오. 제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객차 내에서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승객들을 보십시오. 다들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흥분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다들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다. 아내도 나를 꾸짖는다.

가만히 있어요? 왜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래요.”

아니 이게 왜 별일이 아니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뻔 했는데.”

대전을 지난 우리 열차는 발전소를 지나갈 예정입니다.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할 예정이오니 자리에서 이탈하지 마시고 조용히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찌리리릿강력한 자기장이 열차 안을 휘감는다. 마치 배멀미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속이 울렁거린다. 아까부터 얼굴색이 좋지 않던 앞자리의 아주머니가 드디어 바닥에 토를 하기 시작한다. “우웩 우웨엑어느새 의사가 달려와 아주머니의 얼굴을 살피고 체온을 재고 음식물을 수거해 간다.

이제 나는 소리칠 기운도 없다. 침묵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나를 압박한다. ‘도대체 이게 뭐야?’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본다. 그저 창밖만 내다볼 뿐 내 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는다.

잠시 후 저희 열차는 초고속으로 건널목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는 소리가 열차를 흔든다. 순간 창밖으로 무엇인가가 튀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자동찬가? 아니면 동물? 혹시 사람?’

이제 저희 열차는 종착역인 부산역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돌아가라구?'

그리고 저희가 준비한 기념품을 전해드릴 예정이니 도착 후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기이이익드디어 열차가 선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승무원이 선물상자를 꺼내 하나씩 나누어 준다. 비누와 볼펜이 들어있다. 기념품으로 준 것이겠지. 박스 안 구석에 종이가  접혀있는 것이 보인다.

 

당신의 건강상태

 

장과 신장이 좋지 않음

특히 신장이 매우 약해져 있어 가벼운 이명(귀울림)증세가 있음

완치 불가능

히스테리 질환도 있음

디스크 증세 발견, 완치 불가능

치아 또한 세균에 감염된 상태임

고속열차를 탈 수는 있지만 연 10회 이상은 탈 수 없음

 

이 개자식들 이게 뭐야? 나를 실험대상으로 이용한 거 아냐? 아니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 안 그래 여보?”

내내 말이 없던 마누라에게 내 시선이 꽂힌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말을.”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아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눈물이 번져나가는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산한 상태에서 고속열차 탑승, 향후 6개월간 고속열차 탑승 금지

 

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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