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이자 월요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정규 직장을 그만두고 치러 온 나만의 의식이다. 일이 생겨도 웬만하면 월요일은 피해왔으며 오로지 관악산만 오른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다는 장점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암에서 제공하는 공짜 점식을 얻어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건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정상에 올랐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머릿속이 말랑말랑해졌겠지.
어제도 그랬다. 한동안 읽기에만 치중하고 글쓰기는 간단한 서평 외에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억지로 쓰라고 하면 쓸 수도 있었겠지만 도저히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열정이 생기지 않아서다. 그럴 땐 팬을 들어서는 안 된다. 노트북을 펼쳐 전원을 켜서도 안 된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무작정.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보면 문득 뇌 안의 시작 버튼이 깜빡하고 켜지면서 단어가 팝콘 튀기듯 툭툭 튀어나온다. 처음엔 하나씩 천천히 솟아오르다 어느 순간 테트리스처럼 빠르게 마구 떨어진다. 급하게 단어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나가도 보면 서서히 익숙해지다가 어느새 문장이 술술 흘러나온다. 희한하게도 늘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산에 가거나 수영을 할 때 혹은 자전거를 타고.
문제는 책상 앞에 딱 앉아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있던 단어와 문장을 끄집어내어 자판으로 옮기려 하면 그만 턱하고 숨이 막힌다는 거다. 그 빛나던 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제목 하나는 건졌다. 어떤 내용의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내 모습에 착안하여 이야기를 꾸려갈 것이다. 일종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