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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 디지팩 + 엽서(3EA)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키키 키린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영화는 잔잔하다는 편견이 있다. 살인자연조차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담아낼까를 고민하느라 전혀 잔인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 때는 이런 풍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지만 장르와 상관없이 비슷비슷해져니 금세 질려버렸다. 마치 일순간 광풍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린 홍콩느와르 영화처럼.
<태풍이 지나가고>는 옛 영화를 부활시킬만한 영화다. 제목을 보면 태풍이 뭔가 큰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하게 맥거핀이다. 곧 결정적인 단서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다. 소살가였다가 생활고때문에 사설탐정노릇을 하는 주인공. 그에게는 이혼한 아내와 아들이 있다. 한달에 한번 아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어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가족은 과거를 돌아본다. 이야기를 나누다 미래의 꿈과 희망은 더이상 사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내와 아들은 떠나고 남자는 사무실로 돌아간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바꿔 써도 될만큼 비슷하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픽션에서도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고나 할까? 료타 역의 아베 히로시도 좋았고 단발로 변신한 마키 요코도 담담하면서도 똑부러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압권은 역시 할머니로 분신한 키키 키린이었다. 나는 그녀를 <앙>에서 처음 보았는데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저 푸근하기만한 노인네가 아니라 관객의 감성을 톡하고 건드리는 마력이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자칫 신파로 빠질뻔한 넋두리를 담백하게 풀어주어 도리어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