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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익숙해져서 새로운 발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히기시노 게이고의 글이 맥이 빠진다는 지적이 많다. 구체적으로 특유의 날카로움과 극적인 반전이 줄어들었다. 전개는 평이하고 내용은 소소하다고 할 정도로 잔잔하다. <위험한 비너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소설가는 일정 수준은 늘 유지하기에 실패가 없다. 게이고처럼 다작인 작가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까? 단숨에 읽고나서 아 재미있다하고는 버려도 상관없으면 그만 아닌가? <위험한 비너스>를 읽으며 그가 소설가 장인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공간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 이미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에서 정점을 찍은 기술인데 이번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자유자재로 옮겨다닌다. 마치 독자들 뇌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조금이라도 지루한 구석이 보일 듯 싶으면 얼른 다른 장면으로 옮겨간다. 흥미로운 건 그 이동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통 전문가가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스킬이다. 전혀 다른 컷을 이어붙인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체 얼개와 딱 들어맞는 흉륭한 영화 같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