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구시다 마고이치 지음, 심정명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동생은 문방구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색연필도 12개가 아닌 24개짜리 세트를, 연필도 한 두 개가 아닌 꼭 한 다스를 사달라고 발버둥을 쳤다. 나야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식이어서 관심밖이었다. 지금 동생은 엔지니어다. 과연 문방구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습성이 직업선택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문구를 내가 더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로 글쓰기에 노트북을 활용하고 있지만 연필, 지우개, 볼펜, 스테이플러, 스카치 테잎, 가위, 메모지 등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늦바람이 무섭긴 무섭군. 일 때문이라고 변명하고는 있지만.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는 문구 하나하나의 기능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쓴 책이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이 물씬 풍겨나온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지구본을 고치면서 때때로 지구를 대대적으로 수리해 구해내는 기분이 들었다. 상당히 규모가 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에도 지구를 수리하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지구본 안에 손을 넣을 수만 있다면 이어 붙이는 일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유리 조각을 핀셋으로 집고는 밥풀이 마를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했다. 몇 번 수리에 실패한 끝에 마침내 성공했고 전등을 넣어 회전까지 해봤다.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에 휩싸여 불타버렸지만. 나도 이것을 불 속에서 구해내는 것은 무리였다."

 

 

고장난 지구본 하나를 고치면서 의식이 이토록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의미부여를 해야 하나 싶다. 물론 우산과 마찬가지로 수시로 잊어버려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 마음에 아쉬움은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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