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해 - 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
문숙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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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한다는 것이 곧 목숨을 내놓아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로 끌려가 흠씻 두들겨 맞거나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문화예술인들은 숨죽이며 살얼음판을 건너야 했다. 그 중 극히 일부는 봇물 터지듯 욕망을 토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로 잡혀갔으니까.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예술성과 현실을 타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만희 감독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이만희 감독의 마지막 영화인 <삼포가는 길>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문숙씨가 썼다. 둘 사이는 흔한 감독과 배우관계가 아니었다. 연인이었다. 2017년 지금도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씨의 스캔들로 난리인데 1970년대에는 오죽했을까? 이미 애까지 딸린 유부남 감독과 갓 스물을 넘긴 여배우와의 외도라니? 그래서인지 문숙은 이 감독의 죽음 이후 한국을 떠나 외국을 떠돌았고 만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와 정책했다.

 

<마지막 한해>는 이만회 감독과 보낸 일년여 기간의 일과 영화 <삼포가는 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드물게 솔직한 글이다. 특히 최근에 영화를 본 탓인지 촬영 장소나 그 때 상황을 세밀하게 알 수 있어 감동이 더했다.

 

덧붙이는 말

 

두 사람이 연애하던 시절 동시상영 극장에서 감독은 관객을 향해 한국영화는 개똥이다. 그걸 보는 놈도 개똥이다, 라고 냅다 소리치고 문숙의 손을 잡고 쏜살같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감독이 할 짓은 아니었지만 자괴감과 모멸감 그리고 조롱이 한꺼번에 터져나온게 아닌가 싶다. 이런 그의 행동이 단순히 객기가 아님은 문숙에게 자주 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단 한번도 좋은 연기를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내면에서 끌어나오는 너만의 색깔이 드러날때까지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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