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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처음에 혹하는 사람이 있다. 김갑수도 그중 하나다. 어마무시한 오디오와 자신만의 작업실, 그곳에서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커피머신을 들여놓고 농부들의 피와 땀이 어린 원두를 갈아 우아하게 마시며 매일매일 꽉찬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클래시컬 음악을 원판 엘피로 듣는다. 누구나 꿈꾸는 로망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방을 원한다. 오죽하면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소설을 썼을까?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면 창의력은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면 사람들은 무언가 남다른 일을 하게 마련이다.
김갑수는 음악을 들었다. 그의 이력이 대단하다는 건 직접 간접으로 알고 있다. 많은 음악을 듣다보니 그 음악을 말하고 싶어지고 또 그 인연으로 방송국 디제이도 하게 되고 얼굴도 알려져 티브이 출연도 하게 되었다. 그의 이런 모습이 누구에게나 반가운 건 아니다. 남들은 힘들게 사는게 혼자 참 속도 편하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건 남을 위한게 아니다. 지극히 자기만족을 위해서다. 나도 한 때 내가 들은 음반을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적이 있었다. 나만 듣기 너무 아까워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과시욕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을 자랑하고 싶은. 지금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잠시 멈추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참고로 처음 알리고 싶었던 음악은 바하의 <마태수난곡>이다.
덧붙이는 말
김갑수처럼 작업실은 커녕 변변한 내 방조차 없으니 <지구 위의 작업실>같은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가 없다. 더불어 개인적인 이야기도 되도록이면 옮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든 과장되게 마련이라 역풍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저 반짝 호기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자서전에 쓰인 개인의 흑역사를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