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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루이스 루시아 감독, 마리솔 출연 / 폰즈트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어떤 기억은 머릿속에 각인처럼 새겨져 두고두고 꺼내 먹을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스카라 극장. 과외 선생을 따라 영화를 보러 갔다. 스크린의 여자애는 너무도 예뻐서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예쁜 아이가 마음이 아파 울 때는 나 또한 울먹였다. 그러나 명랑하게 산타루치아를 부를 때는 하늘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내게는 그 여자아이가 부른 산타루치아가 최고다.
어른이 되고 되서고 그 영화가 내내 떠올라 수소문 끝에 비디오 테잎을 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곁에 두고 있게 되자 그리움이 사라져버렸다. 언제 시간 나면 보면 되지, 라고 말은 하면서도 단 한번도 틀어보지 않았다. 무려 만 원이나 주고 샀는데. 참고로 20년 전 물가다.
나만 이 영화를 좋아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마리솔의 팬들이 여전히 그리고 강력하게 군림하고 있었다. 이런 압박이 통했는지 드디오 디브이도로 출시되었다. 스페인 영화치고는 치칙사 대접을 받은 셈이다.
여전히 마리솔은 예쁘고 할아버지는 근엄하면서도 순진하고 남자 아이들은 마리솔 바라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나? 나는 나이가 들었다. 마리솔을 보고 가슴 뛰던 소년은 머리속에서 뛰쳐 나올줄을 모른 채 굳어 버렸다. 산타루치아만 공허하게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