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가는 길
이만희 감독, 김진규 외 출연 / 한국영상자료원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동네 도서관에서 <삼포 가는 길>을 상영한다길래 갈까 말까 고민했다. 본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없어 포기했다. 빌려서라도 볼까 했는데 대출불가다. 얻지 못한 물건에는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는 법. 볼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뒤져보니 유튜브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 그래, 바로 보자, 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다 아냐, 이건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지, 하고 또 찾아보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 예정. 오케이 바로 이거야.

 

<무녀도>를 먼저 보았다. 김동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무당과 그녀를 어머니로 둔 기독교 신자 아들, 그리고 신내림을 기다리는 처녀와의 갈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개봉 당시에는 윤정희가 무당 역을 맡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미스캐스팅. 늙은 어머니 같지 않아 보여서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평면적인 전개였다. 오죽 했으면 영화가 끝나자 옆에 계신 노인이 아, 지루해, 라고 했을까?

 

자, 이제부터 본격 게임 시작. <삼포 가는 길>의 첫 장면부터 압도된다. 눈보라가 마치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처럼 휘몰아친다. 백일섭과 김진규가 만나고 이 둘은 도망친 작부를 찾아달라는 술집 여주인의 부탁을 받고 헤매다 결국 문숙을 찾아낸다. 이후 이 세사람의 희한한 여행길이 펼쳐지는데.

 

프랑스 영화 <줄과 짐>이 떠올랐다. 남자 둘과 여자 한명의 조화가 비슷해서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다르다. 한쪽이 세련된 치정극이라면 반대쪽은 거친 인간애의 확인이다. 나는 물론 삼포 쪽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며 이만희 감독의 상상력과 황석영 작가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했다. 원작의 훌륭함을 영상의 치밀함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문숙이 두 남자에게 잡히고 나서 지갑을 눈바닥에 까뒤집는 씬이 대표적이다. 눈밭에 나뒹구는 빵구난 팬티, 낡은 만화, 잡다한 화장품 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문숙이 놓친 처지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

 

한가지 아쉽다면 영화 말미에 문숙을 놓아버리고 도망가는 백일섭의 장면에서 끝이 났다면 훨씬 더 긴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이탈리아 영화 <길>에 버금가는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이후 이야기는 모두 뒷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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