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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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직관은 금물이다. 옮고 그름이 분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을 수는 없다.

 

양자역학은 이 금기에 도전을 내민다. 예를 들어 상자에 갇힌 고양이가 있다고 하자. 상자 안에 있는 파이프를 열면 독극물이 나와 고양이는 바로 즉사한다. 문제는 그 파이프를 언제 열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자를 열수 밖에 없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 실험은 상상이다. 곧 머릿속으로만 하는 실험이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고안했다. 그는 왜 이런 사고실험을 했는가? 이 실험은 양자역학이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우리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죽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아는 범위에서 풀어보자면 양자역학자들은 에너지의 기원을 파동이 아닌 입자로 보고 뜨문뜨문 떨어져 있으면서 필요할 때만 뭉쳐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반도체가 양자역학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양자역학은 물리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세상의 이치는 인과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테면 어떤 에너지가 어떤 계기에서 결합하여 폭발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세상살이도 비슷하지 않는가? 그 누구도 자신이 지금 처한 처지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닥치는 상황에서 그럭저럭 굴러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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