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공부의 시대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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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후대에 전한다. 김영란은 이미 그 목적을 이루었다. 그것도 살아 생전에. 길이길이 김영란법으로 남을 제도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부정청탁방지를 목적으로 한 이법의 원래 명칭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은 두고두고 남게 되었다.

 

대법원에서 일한 후 국민권익위원장까지 마친 그가 더이상 무슨 욕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글쓰기 열정은 여전히 강렬했나 보다. 연이어 강연집을 포함하여 책을 써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글솜씨가 보통 이상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양한 관점에서 쉽게 전달하는 글쟁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이나 지식을 출세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은 그의 아우라가 지위가 아니라 독서력에서 나오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깜짝 놀라 그가 언급한 책들을 따로 적어 서점에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는 당장의 쓸모 보다 관심의 범위를 넓혀 두루두루 책을 읽어나갔다.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욱 넓혀주었다.

 

이를 테면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에서는 모든 가치를 숫자로 표시하는 공리주의자가 나온다. 숫자가 절대적인 가치가 된다는 것은 숫자화되지 않은 것에는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결과 모든 정책은 수치화되고 비용과 편익이라는 지극히 계산적인 도구외에는 염두에 두게 되지 않는다. 흔히 파업이 발생하면 몇 억원의 손해가 발행하느니 어떤 시설을 새로 지으면 얼마의 경제효과가 일어난다는 따위의 근거없는 근거들을 보라. 실업으로 생계의 위협은 자존감까지 떨어져 자살충돌에 시달려 다리위를 방황하는 가장의 굽은 어깨는 그 어느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로가 건설됨으로써 고향마을이 두쪽 나 땅 소유자와 그렇지 않는 사람간에 철천지 원수가 되는 상황 또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김영란은 소위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일수록 어떤 제도 혹은 정책으로 영향받게 될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 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공감이란 지배세력이 아주 좋아하는 법과 원칙의 차별적 적용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여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학 서적만 읽을 게 아니라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시와 소설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그 쓸모없음이야말로 진짜 쓸모있음을 알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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