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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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멀리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가까에에 있을 때는 진실같아 보였는데 멀어지고 보니 거짓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거리와 상관없이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멀리 갔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는 말.

 

목수정은 멀리 가서도 변함이 없다. 세상 어디에나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있기 마련이고 피지배자는 억압의 대상이니까. 피지배자는 자신들의 의사를 하소연할 세련된 조직도 막강한 자금도 권위있는 권력도 없기 때문에 맨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서울과 파리의 거리는 단숨에 좁혀진다.

 

그럼에도 부러운 건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다. 한 때 영국에 살고 싶은 욕망에 들끓은 적이 있다. 고작 삼개월의 어학연수 생활이 전부인 내게 영국은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과 변화가 적절히 이루어진 사회였다. 실제로 영국은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의 혁명자들을 관대하게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한 때 였지만.

 

영국을 향한 꿈은 일단 접었다. 잡다한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영어는 내게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영국의 노동자와 연대하여 지배세력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다고 해서 그와 나는 함께 할 수가 없다. 개인의 역사는 계급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그녀는 일본식 표현이다)의 글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바로 이 지점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에게 프랑스는 어찌되었건 문명국이고 한국은 여전히 야만부족이다. 프랑스 학교의 예를 들며 불복종을 찬영하는 사례를 든 것이 그 증거다. 진보주의자들 조차 비교역사관에 사로잡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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