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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랜섬 릭스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뻔했다. 아빠가 반복해서 걸려드는 악순환이니까. 어떤 프로젝트에 열정을 느끼고 몇 달간 그 얘기만 한다. 그러다 조그만 문제가 발생하면서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 아빠는 정면대결을 하기보다는 두 손을 들어버린다. 결국 그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 과정이 다시 반복된다. 아빠는 아주 쉽게 좌절한다. 아빠의 책상 위에는 늘 끝내지 못한 원고들이 쌓여 있었고 수지 고모하고 함께 계획했던 조류용품점은 결코 문을 열지 못했고 아시아 언어를 전공했으면서도 아시아 국가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빠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었고 엄마의 돈 없이도 살 수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그리지만 어떤 형태든 작가의 의식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말이다. 할아버지와 끈끈한 연대를 맺은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방해자에 불과하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할아버지를 공공연히 비난하다. 나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빅 피시>에서도 보았다. 결국 부자지간은 늘 긴장상태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전체 내용에 비하면 매우 소소한 부분일지 모른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아버지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치 뒷배경처럼 존재할 뿐이다. 작가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무의식은 송곳처럼 뚫고 나온다. 아버지는 늘 쉽게 좌절하고 핑계거리를 만들어댄다. 나 또한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같은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부르는 아버지에게 어떤 누가 존경의 눈길을 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떠한가? 나는 소설 속에서 어떻게 묘사될까? 식은 땀이 흐르는 두려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