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평점 :
최근 나는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그것은 강명관 선생이 쓰신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다. 저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일상을 추적함으로써, 그 시대의 전통(혹은 폐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의술, 도박, 술, 과거와 같은 다양한 소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과거에 가장 관심이 끌렸다.
언젠가 조선시대의 과거를 재현하는 행사를 본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의복을 갖춰입고 실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엄숙한 자세를 보여주어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실제 과거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자격을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10만 명 이상의 양반이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 열기가 대단했음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열기만큼이나 갖은 부정과 편법이 판을 쳤다는 것이다. 시험장의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음은 물론(몸싸움을 전담으로 하는 선접군이라는 전문직업이 있을 정도였다), 심부름하는 노비들이 유생들의 붓과 책을 비롯한 각종 보따리를 갖고 들어갔음은 물론이고(시험장에 책을 갖고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었다), 심지어는 술을 파는 장사치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거기에 시험을 대신 보아주는 거벽(과거 담안지를 전문적으로 지어주는 사람)과 사수(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까지 총동원되었으니 시험장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던 셈이다. 채점 또한 그 많은 답안지를 제대로 볼 수 없어 빨리 제출한 사람들 것만 대충 보고 끝내는 바람에 한자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유생이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조선시대만의 폐습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대판 과거라고 할 수 있는 고시는 예전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고시뿐이겠는가? 대입시험을 보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입신양명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이를 위해 재수, 삼수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과 대리시험까지 치르는 일이 생겨난다. 직장은 또 어떤가? 이른바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가 조선시대의 판박이다. 오로지 출세해야만 이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 그러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신종 고시에 목을 매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자의반, 타의반 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강명관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실력은 있으나 아예 자격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술과 노름질, 혹은 기생질로 인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들은 재력이나마 있는 중인계급이었으니까 한량으로 지낼 수 있었다. 재력조차 없는 일반 서민들은 그저 평생을 농사나 짓다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농사라도 잘 되면 다행이지만, 흉년이라도 들라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굶어죽거나 도적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거대한 도적무리가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이라고 별 다를 것이 있겠는가? 다들 신분이 자유롭고 기회가 평등한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속된 말로 지방대학을 나온 사람은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도 힘들다. 어쩌다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부고위관리나 개각때마다 나오는 장관들의 출신학교를 보라. 그나마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오죽 하겠는가? 실력은 뛰어나나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나 상고를 나와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의 고통은 조선시대 중인과 다를 바 없다. 사정이 이러니 이 사회에 울분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개인의 무능력을 탓하며 술과 담배를 벗삼으며 스스로를 망치고, 일부는 조직을 만들어 대항하려 하지만 기득권의 벽은 높고도 높아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