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안은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내뿜는 후끈거리는 열기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책을 꺼내들었다. 제물포역까지 가는 1시간 반이 넘는 여정을 숨만 뻐끔거리며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꺼내든 책은 김훈 선생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이었다. 말을 멀리 돌려말히지 않고 직접 들이대는 김훈 선생의 책다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밥벌이가 지겹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그 지겨운 밥벌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반백수 상태다. 얼마전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재직증명서와 원천증명서를 뗄 수가 없어 포기한 일이 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하는 나같은 계약직에게는 재직증명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한다.

건성건성 책을 읽다가 어느 장면에서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2002년 있었던 공기업 노조의 파업을 다룬 글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민영화 반대'와 '24시간 맞교대 철폐'를 부르짖었다. 김훈 선생은 24시간 맞교대는 3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인간의 몸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노동제도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문제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러한 노동제도가 말도 안되는 이념공세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이기 때문에 24시간 맞교대가 부당하고, 보수이기 때문에 그것이 타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해 24시간 맞교대가 부당하다는 것에는 이념이나 노선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김훈 선생은 진보나 보수를 내세우며 말을 소비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노동제도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방식의 노동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더구나 국가가 그 방식을 제도화해서 시행할 수는 없을 것(김훈, 2003:126)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얼굴이 벌개지면서 눈이 충혈되는 것을 느꼈다. 단지 지하철안에 사람이 많아서, 이틀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 땅에 아직도 그런 노동제도가 버젓히 시행되고 있고, 그나마 그러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해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