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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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순간은 찰라이고 시험문제가 헷갈릴 때 처음 찍은 답이 맞을 확률은 90퍼센트를 넘는다. 척보면 압니다랄까? 괴물작가라는 소문을 뒤늦게 접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보자는 생각에 회색인간을 펼쳤다. 그러나 첫 문장부터 소문난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소설에 인간이니 존재라는 단어를 쓰다니 흠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 참아보자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런, 에게 있어라는 표현을 쓰다니. 작가는 우리 말 어법에도 없는 일본어 직역임을 알고 있는가? 게다가 그들이라니? 두루뭉술한 대명사는 소설의 적인데. 게다가 것은 또 뭔가? 안정효 선생이 보셨으면 통탄한 일이다. 것, 것, 것의 남발이야말로 글 읽기를 방해한다.


바로 접었다. 죄송하지만 빠이빠이. 지금까지 이렇게 중단하고 다시 책을 드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김동식의 0.5초의 궁금증을 원작으로 한 짧은 동영상을 보고 매료되었다. 혹시 이 작가는 진짜 몬스터일지도 몰라. 이 책에 실린 디지털 고려장은 그의 마력을 마음껏 펼쳐내고 있다. 가까운 미래, 죽음에 이르게 된 노인은 기억으로 박제되고 자녀들은 업데이트를 하여 가상공간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뜬구름 같은 소리가 아니다. 오늘날의 메타버스를 보라. 문제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빈부차이는 있는 법, 아니 더 늘어난다. 새 데이터를 바로바로 올리지 못하는 가족들로 인해 디지털세상 안에서 노인은 더욱 소외되는데. 과연? 


한국에서 이처럼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작가가 있을까? 더욱 놀라운 건 카이스트니 뭐니 하면서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고 그야말로 매일매일 성실하게 글을 써나간다는 사실이다. 공장노동자였다는 배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래도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는 게 중요하다. 뒤늦게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문법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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