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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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에는 한 가지 의미만


책과 영화를 처음 읽고 보았을 때부터 내게는 원칙 같은 것이 있었다. 아무리 재미없고 지루할지라도 끝까지 함께 하라. 나름 이유가 있었다. 형편없는 쓰레기일지라도 한 가지는 건질게 있다. 가령 하품이 나고 졸리는 영화라도 바다 장면은 근사하다든가, 내내 좌절감에 시달리는 책이라도 첫 문장은 기가 막혔다라든가. 


그러나 언제부턴가 헛된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세상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보물이 훨씬 더 많은데 진흙 밭에서 진주를 찾으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후 내 기준은 바뀌었다. 영화는 첫 5분, 곧 시작이 인상적이지 않으면 바로 극장을 나오든지 디브이디를 꺼버리고 책은 비문이 눈에 뜨이는 즉시 덮는다. 


불행하게도 정유정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문은 용서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문장쓰기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소화되지 못하고 몸속에서 쌓이는 음식물과 같다. 물론 의도적으로 문장을 뒤틀어 효과를 노릴 수는 있다. 소설가중 소설가라는 헤밍웨이나 은유와 묘사의 마술사 스티븐 킹이 대표적이다. 정유정은 이들과 달리 일관되게 비문을 쓴다. 직접 예를 들어보자.


외박 사유인즉 이러했다. 지난여름 해진이 연출부 스태프로 참여했던 <과외>라는 영화감독이 새 일거리를 붙여주었고, 일거리 계약서를 쓴 기념으로 술집에서 막걸리를 좀 마셨으며, 낮에 찍은 환갑잔치 동영상을 편집해야 해서 선배네 작업실에 갔는데, 방이 지나치게 따뜻했던 관계로 깜빡 잠이 들었다.


정직하게 말해 정유정에 애정이 있다. 이른바 문단고시에 목매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굽실대며 아무도 읽지 않는 문학잡지에 구걸하며 글을 연재하는 대신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패기도 높이 산다. 그럼에도 작가에게 읽히지 않는 문장은 죄악이다. 소설은 본인만 보는 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앞의 해괴한 문장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그날 외박을 했다. 작년 여름 해진은 영화사의 연출부 직원으로 일했다. 타이틀은 과외였다. 감독 덕이었다. 함께 일하게 된 걸 축하할 겸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이차를 가자는 꼬임을 간신히 뿌리치고 선배 작업실에 들렀다. 낮에 찍어둔 환갑잔치 동영상을 편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바닥이 뜨듯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술기운도 작용했다.


문장은 변경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렇게 매사에 꼼꼼하다는 작가의 글에 개연성이 없다. 우선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제 외박을 했는데 작년 여름? 아마도 그 때 인연을 맺은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었다는 것 같은데 문장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동영상 편집을 왜 밤늦게 선배 집에서 하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밝혀 마땅한데. 둘째, 단어 선택의 오류. 일거리 계약서, 관계로 같은 단어는 생소하고 낯설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전에 없으니까. 셋째, 한 문장에 한 의미만. 사실 결정적 오류가 이것이다. 시제와 시점과 사건이 얽히다보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물론 작가의 머릿속은 어떤 뜻인지 알겠지만 중요한 건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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