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녀로 데뷔한 윤여정. 

50년 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공로상


나는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다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절실하지는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는 아니다. 그냥 낯설었다. 죽을 각오로 뭔가를 한다는 게.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 그렇게까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허무주의에 빠진 건가?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작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싹쓸이 하는 바람에 감탄이 살짝 줄어들었지만 놀라운 건 분명하다. 물론 영화자체는 완벽한 미국자본이 참여했지만 윤여정은 토종 한국인 아닌가? 게다가 본인 대사 대부분을 우리말로 했다. 그런 역할을 한 배우가 오스카를 수상하다니?


그는 다채로운 말솜씨로도 화제에 올랐다. 영국아카데미상을 거머쥐고서는 거만한 영국인들에게 받아 더 감동이다, 독립영화인줄 알고 고생하겠구나라고 했다는 등 사실을 말하면서도 유머를 담아 재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아들의 잔소리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트로피는 엄마가 힘들게 일한 성과다라고 단언했다.(그러니 잔말 말라는 뜻)


그렇다면 윤여정은 왜 이렇게도 스스로를 강하게 다루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혼녀에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경력 단절녀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야말로 도둑질 빼고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노출연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몸 팔러 다니는 할머니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어쩌면 이번 여우조연상은 일종의 공로상 성격이 짙다. 아무리 자신들은 모르는 한국의 여배우라고 할지라도 데뷔 50주년을 맞은 그의 필로그래피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드문드문 온 에너지를 불사른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또다시 안이함의 틀에 갇히곤 했다. 지금은 그러기 더욱 좋은 환경이다. 나이도 들었고 몸도 아프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마인드다. 이런 생각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은 물론 사회를 위해서도 어떤 기여를 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나만의 절실함이 무엇이며, 그걸 꾸준히 유지시킬 방법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시간을 두고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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