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개에게는 어떤 악한 의도도 없었다


습관처럼 그래미상 시상식 티브이 중계를 보고 있었다. 배철수, 임진모의 티카타가가 재미있어서다. 비티에스가 수상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음악 쇼다. 진행자는 쉼 없이 떠들고 있었다. 미국식 유머가 재미있을 턱이 없다. 아무리 번역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코미디 빅리그를 보며 박장대소할 미국인이 있을까? 그런데 배씨 아저씨가 특이한 소리를 한다. 저 친구 되게 웃겨요. 책까지 냈다던데. 태어난 게 범죄라 뭐라나? 그 말을 새겨들은 나도 대단하다. 방송이 끝나고 물어물어 찾아냈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오늘 처음 들쳐보았다. 재미있었다.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바로 알았다. 트레버 노아는 진짜 태어난 게 범죄였다. 남아공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면 감옥에 간다. 남자는 5년, 여자는 4년. 정말 엿 같은 세상이었겠다. 다행히 지금은 아니지만. 이 책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훈계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면 강아지. 애지중지 키우던 개가 어느 날 울타리를 넘어 다른 집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개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집 아이는 자기 개라고 우긴다. 이런 X같은 일이. 급기야 어머니까지 출동하여 사진과 증명서까지 내밀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다. 사태는 희한하게 풀렸다. “좋아요. 그럼 100랜드(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를 줄게요.” “그럽시다” 그 아줌마도 동의했다.


트레버는 안도감과 함께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을 찾아온 주인에게 반갑다며 당장 달려올 것 같던 강아지가 태연하게 잘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피가 나를 두고 다른 아이와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이 일은 트레버에게 가치 있는 교훈을 남겼다. 푸피는 밖에 나가 자신의 삶을 즐겼을 뿐이다. 개에게는 어떤 악한 의도도 없었다. 나는 푸피가 내 개라고 믿었지만,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푸피는 그냥 한 마리의 개였다. 우연히 우리 집에 살 게 되었을 뿐이다.


이 글을 읽고 깊이 감동했다. 가슴 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었다. 3년 가까이 어머니 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원래 주인이 가져갔다. 그렇다면 차라리 맡기지 말지. 한동안 어머니는 그 개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아무 말도 안 하신다. 걱정이 되어 개가 잘 있냐고 물어도 그 집에서 편안하게 지낸다고 앙칼지게 대답하신다. 우리 집 개가, 정확하게 였던, 다른 곳에서도 행복하게 산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이제 알았다. 그 개는 그저 개였으며, 우연히 우리와 함께 했을 뿐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는 주어진 상황에서 맺어졌을 뿐이다.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 꺼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처 입는 사람은 본인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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