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의 시간
이종열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파트먼트 계단을 오르내린지도 넉 달이 지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집을 비운 날도 인근 건물에 들어가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아직 일 년을 채운 건 아니지만 이정도면 계단 오르내리기 관련해서는 장인이 아닐까?


조율의 시간을 읽다 든 생각이다. 1938년 태어나 1956부터 피아노 조율 일을 했으니 갓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본인의 본업을 찾은 셈이다. 이후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쭉 같은 일을 했다. 무려 65년을. 이쯤 되면 자시의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율의 세계에 입문하여 살아온 세월, 조율에 대한 전문지식, 그리고 무대 뒷이야기. 정직하게 말해 마지막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책구성상 중간에 위치해있다.) 클래시컬 음악 애호가라면 단박에 알법한 연주자들이 어떤 요구를 했고 해프닝이 있었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깜짝 놀랄만한 스토리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이를테면 어릴 때는 엄마와 스승과 함께 와서 수줍어하던 키신이 서너 차례 방문이 이어지자 홀로 당당하게 조율을 요구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질듯 생생하다. 


개인적으로는 잉글리드 헤블러와의 인연이 인상 깊었다. 명성에 비해 덜 알려진 그는 조용한 성품으로도 유명한데, 아니나 다를까 전혀 까탈을 부리지 않고 부드럽고 따듯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고령임에도 십 년 이나 된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손 키스까지 했다니 그날의 정경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 다음이다.


“얼마 후 같은 피아노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는데 얼마나 피아노 타박을 하는지 모든 스태프들이 누구 말이 맞는지 당황했다. 우리는 모여서 의견을 모았다. 잉그리드 헤블러의 말을 믿기로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