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을 넣는 즐거움은 남자들만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운동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방송가에서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여 티브이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케이블이나 오티티 활성화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풀이 다소 죽긴 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다양한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선을 보였다. 곧 시험 삼아 내보내고 반응이 좋으면 정규로 자리 잡는 식이다. 일요일 밤을 책임지는 구해줘 홈즈도 그렇게 출발했다.


모든 시험 방영분을 보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에스비에스의 <골 때리는 그녀들>*이었다. 연예인이나 다른 종목 선수들을 주축으로 축구시합을 하는 포맷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대상이 여자이고, 팀을 나눠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리는 건 참신했다. 게다가 각 팀의 감독이 2002년 주역들이었다. 아무래도 예능이라 웃음 포인트가 강할 거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다큐였다. 다들 악착같이 진심으로 경기에 임했다. 심지어 한혜진은 발톱이 빠지기 일보직전에 이를 정도로 뛰고 또 뛰고 차고 또 찼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성들이 운동을 하기란 여전히 힘들다. 특히 축구처럼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경기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대부분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실내 운동이 전부다. 이유가 뭘까? 단순히 개인의 선호도차이 때문은 아니다. 여자들은 몸매를 다듬거나 체중을 줄이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큰 역할을 했다. 반대로 축구처럼 과격하여 다칠 우려가 있는 경우는 여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전문 축구선수가 아닌 이상 여성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프로 선수가 아니더라도 조기축구 등 다양한 경로로 축구를 즐기는 남자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남자들이 볼을 차며 느끼는 희열을 여자들이 경험하지 못한다는 게.


<골 때리는 그녀들>은 이러한 편견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그라운드를 치열하게 누비는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럼에도 옥에 티들은 있었다. 우승이 결정되고 난 뒤 진 팀의 선수들이 하는 한탄 중 일부는 비상식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최종 우승팀 선수들은 비혼이거나 자식들이 없었다. 마치 아이가 없어 체력이 우수하고 결혼도 하지 않아 남편도 없으니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여자들조차 남자들이 덧씌운 왜곡된 논리로 같은 여성들을 바라본다는 게 서글펐다. 또 한가지 골을 넣을 때마다 상으로 살림살이 상품을 준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자를 집에서 일하는 주부로 한정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뭉쳐야 찬다>에서 골을 성공시킨 선수에게 청소도구나 수저세트를 준다고 상상해보라.


* 그녀는 일본어 가노조(かのじょ)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본래 뜻은 사내의 계집으로 명백히 비하하는 의미를 품고 있다. 최근 들어 여자를 특정지어 부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 경찰관을 Police man, Police woman이라고 구분짓지 않고 Police person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사진 출처 : 여자들이여 공차러 가자! (골 때리는 그녀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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