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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처음엔 비스듬히 누워 잠들기 전 수면촉진제용로 페이지를 들추었다. 제목부터 딱 그랬다. 느릿느릿하며 지루하겠지. 예상은 맞았다. 적어도 문장만큼은. 그러나 나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가 의자에 허리를 붙이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혼을 결심한 중년의 출판사 편집장. 자신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야 하는 처지다. 하나뿐인 아이는 미국에 있는데 부부에게 관심이 없다. 애써 냉정한 척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은 원래 전처가 더 많았다. 본인이 위자료를 받아야 할 판이다. 모든 상황이 도로에 바짝 눌어붙은 비 맞은 낙엽신세인데 어쩐 일인지 다다시는 희망에 차있다. 이제야말로 나만의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보자. 그 출발은 나만의 하우스다.
저자 마쓰이에 마사시는 다작하는 작가가 아니다. 당초 직업도 건축가였다. 스스로의 경험을 풀어 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히트를 치면서 다들 후속작을 기다렸다. <우아한지 어쩐지 모르는>은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두 인물이 떠올랐다. 한 명은 윤광준, 다른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 두 사람 모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다. 코로나 19 이전에 일찌감치 언텍트 생활을 실천에 옳기기도 했다. 그러나 마사시가 이 둘과 다른 점은 생활의 때에 절어 있으면서도 고상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곧 윤광준이 소비주의로 하루키가 관념적 우아미로 포장한다면 마사시는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