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 84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자막 


기안 84 자체가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 두렵다 


기안 84 논쟁이 여전히 거세다. 그가 웹툰에서 표현한 장면을 두고 이어진 논란은 급기야 페미니즘과 창작의 대결구도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이 둘 모두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창작은 가상의 세계이지만 페미니즘은 현실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곧 두 개념이 노는 물 자체가 다르다.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따라서 페미니즘 측에서 기안 84를 공격하려면 웹툰이 아니라 그가 평소에 한 말이나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지금은 페미의 편에 서고 싶다. 이는 마치 미국의 흑백갈등과 마찬가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이든 주변 여건 때문이든 흑인들이 문제의 소지를 갖고 있거나 촉발한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흑인의 편을 드는 이유는 동등한 기준을 갖고 판단하기에 여전히 백인들에게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지다. 일부 페미니스트가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핍박받은 것은 분명하다. 


기안 84의 언행은 반대점에 서있다. 다시 말해 여자를 인격체가 아니라 단순한 도구 내지 가벼운 소재로 여겨온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의 사과문을 보면 기안 84는 단지 표현의 문제라고 하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여전히 그릇된 남성관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다면 창작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하는가? 엄연하게 말해 그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소속되어 있는 작가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가 진정으로 남성우월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와 타협하지 않겠다면 소속사를 나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기안 84 자체가 아니라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해서 반대를 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독립하여 활동하는데도 더 큰 환호를 받는다면 그 땐 어쩔 수 없다.


*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의 행동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어떤 운동이든 초창기에는 과격해보이기 마련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공공장소나 식당 안에서의 금연을 생각해보시라.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착용도 마찬가지다. 기안 84의 마인드는 퇴행적이며, 창작의 영역이든 실생활에서든, 그저 낡아 허물어지고 있는 둑에 억지로 손을 집어넣어 막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면 페미니즘이라는 말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사진 출처 : 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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