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은 분명히 있다


한 후배가 급하게 전화를 했다.


“선배, 오늘 저녁 때 시간 좀 되세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시컬 음악 공연이 있는데 함께 가줄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평소 고전 음악을 좋아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지, 라고 나는 순진하게 생각하고 “응”하고 답했다. 연주회를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그녀는 말했다.


“오늘, 고마워요”


나는 “뭘, 그런 걸”하고 쑥스럽게 말했다.


후배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드레스 코드도 센스 있으시고”


그날 나는 바지는 편한 캐주얼이었지만 구두에 셔츠, 그리고 윗도리는 정장차림이었다. 클래시컬 공연이 있으면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나만의 규칙을 그날도 적용했다. 그러고 보니 후배의 드레스는 꽤 화려했다. 자칫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갔다면 영 아닐 뻔 했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그녀는 아마도 남자친구와 뭔가 어긋나는 일이 생겨 곤란한 상황에 처한 듯싶었다. 그렇다고 비싼 표를 버리거나 갑자기 남을 주기도 어려워서 나를 떠올린 게 아닐까? 나한테 조금이나마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구요? 글쎄, 나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날 공연 연주자와 레퍼토리만 궁금했을 뿐이다.


류호정 의원의 옷차림이 화제다. 국회에서 무릎이 드러난 원피스를 입었다고 해서다. 기자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누군가 옷차림이 그게 뭐냐는 식의 댓들을 달았다. 가벼운 설전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기사화되면서 도리어 일파만파 커져갔다. 옳다, 그르다, 꼰대냐 등등. 개인적인 의견은 국회위원의 품위를 떨어뜨릴만한 의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걸맞은 옷이라고도 판단하지 않는다. 클래시컬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연습을 할 때는 어떤 의상을 입어도 상관이 없다. 반바지도 오케이. 그러나 정작 본무대에서는 보기에도 답답한 연미복이 의무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짧은 머리도 없다. 남자건 여자건 모두가 다 그렇다. 왜 그럴까? 행여 옷차림 때문에 감상이 방해가 될까봐서다. 곧 시선이 음악이 아닌 다른 곳에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 아닐까? 본인 사무실에서야 어떻게 입든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본회의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누구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한번쯤 고민해봐야 마땅하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특정인의 옷차림에 시선을 빼앗기면 안 되지 않겠는가? 굳이 여성의원이라고 해서 차별하는 건 아니다. 과거 유시민 의원의 유명한 백바지 사건을 보라. 그건 일종의 항거였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국회의 권위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도발한 셈이기 때문이다. 드레스코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늘 있어 왔다.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이야말로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존중하는 의미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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