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내 아들, 네가 결국 해낼 줄 알았다


한 때 헨리 조지에 큰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는 모든 세금을 포기하고 오로지 땅에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 불로소득을 없애야 빈곤이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죽고 나서도 별 반향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잇달라 금융사고가 터지며 새삼 주목받았다. 피땀 흘려 본 돈을 모아 투자하여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놓고도 고액의 배당을 받은 투자회사가 타깃이었다.


흔히 불로소득은 노동의 대가로 얻는 임금이나 보수 외의 소득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주식, 부동산이 있고 상속, 연금, 복지기금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학에서는 지대소득이라고도 불린다. 중세시대 땅을 소유한 지주들을 빗대어 만들 말이다. 여하튼 이런 소득에 대한 시선은 곱지 못하다. 일하지 않고 남의 등을 쳐서 먹고 사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불로소득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피케티가 분석했듯이 생산소득의 성장률보다 자산이 더욱 가파르게 오르면서 역전되었다. 곧 매달 월급을 받는 것보다 목돈으로 아파트먼트를 하나 사두면 수익률이 훨씬 더 크다. 역설적으로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생산성 향상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갈 길을 잃은 돈들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가 나빠지니 금리는 계속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다. 금리가 낮아지니 돈은 또다시 수익을 쫓아 움직이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쩌면 이는 노동의 종말과도 깊은 관련을 갖는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가는 노동이 점점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른바 신산업이라고 하는 정보 분야는 육체보다는 머리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동 대신 서비스직으로 몰리게 된다. 요컨대. 산업이 정보와 서비스로 양극화된다. 전통적인 육체노동은 축소되거나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고 그나마 있는 직업은 서비스로 포섭된다. 택배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산업이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거대한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배달앱이나 온라인 몰은 대표적인 예이다.


정보화가 더욱 진화할수록 불로소득의 여지는 더욱 커지게 된다. 곧 생산 외 부가소득 규모가 증가한다. 유튜브는 대표적이다. 직접 물건을 만들지 않음에도 비교 평가하는 것만으로 소득을 창출시킨다. 먹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전통 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활동은 죄다 불로소득자들이다. 자동차 광고가 떠오른다. 하는 일이라고는 방안에 틀어박혀 입이 찢어져라 햄버거를 먹으며 일인방송을 하는 게 전부인 젊음이가 있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제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라. 그런 그가 명절에 고향에 오는데 타고 온 차가 그랜저. 엄마는 두 팔 벌려 환영하며 환호한다. “장하다. 내 아들, 네가 결국 해낼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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