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는 대의를 위해 희생당하는 개인을 그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처지에서는 슈퍼돼지를 내세워 잔인한 도축현장을 고발하고 싶어 했다. 미자는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하나 옥자가 당할 갖는 고난의 걱정되어 함께 하기를 꺼려했다. 자칫 불발될 것 같았던 이들의 동행은 케이가 미자의 말을 반대로 통역하면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봉준호는 결과적으로 목적은 달성되었고 옥자와 미자는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며 아름답게 마무리하지만 현실이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씨는 애증의 관계가 맞다. 만약 윤씨가 나서서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용수 할머니는 남은 평생을 숨죽여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으로서는 그것이 더 나은 삶일 수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일본의 잘못을 널리 알렸다. 만약 일본의 위안부 스캔들이 단순한 실수였다면 넘어갈 수 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전쟁기간동안 약 20만 명이 동원되었고 그 중 대부분은 한국 출신이었다. 어떤 형태든 드러내서 죄를 물어야 마땅했다.


딜레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은 다소 손해를 보아도 되는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대의다. 해답은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다. 단체를 이끄는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고, 이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만 함께 했어야 마땅했다. 불행하게도 윤미향 세력은 그러지 못했다. 더 나아가 모금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공정과 투명의 원칙이 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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