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전자 핑키 105
제 몫을 하는 플레이어
결국 여기까지 왔다. 말러 음반을 찾기 위한 대청소가 마침내 카세트테이프 사랑을 거쳐 드디어 플레이어까지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어쩌겠는가? 이게 또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는가? 만약 집안에서 보물처럼 혹은 유물처럼 옛날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플레이어를 따로 장만하시겠는가? 아니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것인가? 물론 개인의 자유지만 나는 들어볼 것을 권한다. 단지 추억에 잠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해야 좋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마냥 좋게만 들렸던 그 소리가 매우 조악하고 거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또한 나름의 맛이다.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늘 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보리차를 담은 주전자가 떠오른다. 지글지글하며 구수하게 피어오르던 그 향이 소리에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실제로 카세트테이프에는 잡음이 반드시 따라붙게 마련인데, 그게 또 듣기 좋다. 일종의 화이트 노이즈로, 요즘 같으면 에이에스엠알 기능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소리가 거슬려서도 안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일단 음색이 좋고, 가격도 적당하고, 오래 가는 물건이 최고인데, 과연 정답은? 내 선택은 롯데전자 핑키 105다. 사실 우리 집에는 이미 플레이어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에도 이 기계를 산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이 싸고 크기가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곧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건 소리가 좋다. 지금까지 카세트테이프로 들어본 음색 중에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물론 별도의 앰츠나 전문 스피커가 장착된 것은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기능이 단순한 것도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잡다한 이른바 멀티형 전자제품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고장이 난다. 이 제품은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 딱 두 기능뿐이다. 설령 테이프 기능이 나중에 망가지더라도 라디오는 절대 끊기지 않는다. 모든 오디오 기기 중 때려 부수지 않는 한, 혹은 부셔도 내부만 괜찮으면 고장이 나지 않는 건 라디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핑키는 제 도리를 다하고 있다. 재난대비 비상용으로도 최적이다. 가격은 쇼핑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2만 원대 초반이다.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사용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