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결혼하자마자 임신한 채로 일본에 왔어요. 일종의 도피였지요. 두 집안 모두 반대가 심했거든요. 아버지는 재일교포였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었어요. 두 분 다 운동선수였어요, 아빠는 유도, 엄마는 양궁. 불같은 사랑을 했다고 해요.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잖아요. 선수를 그만두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고물상을 물려받았는데 한 때는 장사가 잘되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결국 가게를 접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벌였지만 죄다 망했어요. 술주정만 늘고 부부싸움은 더 잦아졌죠. 결국 엄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제가 세 살 때였어요. 아빠는 제가 중2, 그러니까 열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요. 저는 처음엔 큰아빠네 살다가 나중에는 이 집 저 집 전전했어요. 한국에는 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사실 어디 계신지는 몰라요. 일본에 있는지 한국에 살고 계신지 아니면 미국으로 이민 갔는지도. 그냥 일본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고민 없이 바로 왔어요.


답답했다. 말없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펴도 되지?”

“네, 피세요.”

사실 끊은 지 석 달 만이었다.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재미없죠?”

“아니, 그건 아닌데 ......”

“저, 사실 이런 말 한국 와서 처음 하는 거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었다.

“부담 드리고 싶지는 않은데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선배한테는.”

‘날 언제 봤다고?’

“저 도와준 거 기억 안 나세요? 입학실 날”

“입학실 날?”

전혀 모르는 일이다. 혜자를 본 적도 없었다.

“그날 나 마스크 쓰고 있었잖아요. 신입생 교재 어디서 나눠주는지 몰라 당황할 때 데리고 가 주셨어요.”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런데 여러 명이었던 것 같은데. 복학신청을 하러 과사무실에 들렀을 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뭔 책을 받으러 왔다는데. 마침 과조교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신입생들 교재는 늘 과방에 쟁겨놓고 있었으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오라고 하고 같이 갔다. 과방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헤어졌다.

“혜자가 그 중에 한 명이었나?”

“네”

나는 피식 웃었다.

“왜요?”

“아니, 그냥”

일본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에서 오래 산 한국 사람이지만. 별 거 아닌 도움을 기억했다가 반드시 갚고자 하는 마음이 말이다.

“큰 도움도 아닌데 기억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야.”

“그런가요? 전 엄청 고마웠는데.”

“그럼 됐고”

혜자도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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