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우울과 무기력에는

작고 소소한 성취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게는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칵테일을 만들고, 플랭크를 하고, 한 권씩 책을 읽는 일이 그렇다.


_하수연


미치도록 글이 쓰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평범한 하루였다.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예약해둔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가고 동네 빵집에 들어 꽈배기 3개를 2천 원에 사고 바로 옆 커피점에서 열 번 마신 쿠폰으로 천오백 원짜리 커피를 천 원 할인받아 오백 원에 겟해서 꽈배기와 함께 먹고 마셨다. 그리고 공원을 산책하다 그늘진 벤치에 앉아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읽었다.


저녁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동차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아, 이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하필 내 차 앞의 자동차 후미등이 계속 켜져 있다. 당연히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끌 줄 알았는데. 안내원에게 이야기하니 시동을 키면 꺼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랴부랴 검은 비닐로 막았지만 내내 거슬렸다.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집 근처 주자장에 차를 세우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현관 문 앞 보도에 대형 오토바이가 떡하니 서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관리실에 이야기하고 당부까지 했겄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오늘 하루 좋았던 모든 기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더 화가 나는 건 오토바이를 세운 사람은 내게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는 걸 모를 거라는 확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냅다 발길질을 해서 쓰러뜨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신문 사회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 붉히고 생돈을 뜯기는 일이 생길 것이다.


애써 가라앉히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대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고 한 삼 십 분을 노려보다 겨우 써나갔다. 세상의 불의와 유쾌하게 맞서 싸우는 몇 안 되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하수연 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강박과 완벽주의는 같은 고리를 타고 났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아참 내일 아직도 그 자리에 괴물이 있다면 점잖게 <보도위 오토바이 주차금지>라고 쓴 종이를 붙이고 올 생각이다.


관련 블러그 : https://blog.naver.com/mmsnmm/22184538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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