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때에 가고 싶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는 내 몫을 했고,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_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양자혁명을 다섯 번째 완독했다. 이주만이니 꽤 오래 걸린 셈이다. 그러나 초반의 지지부진했던 진도와 달리 막판에는 하루에 백 페이지 이상 읽으며 스퍼트를 올렸다. 매번 느낌이 다른데 이번에는 아인슈타인에 마음이 많이 갔다. 화려한 위상과 달리 말년의 그는 보어 학파에 의해 찢기고 물어뜯기고 얻어맞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가뜩이나 나치 때문에 불안 불안했는데. 마치 자신이 세운 맥켄토시에서 쫓겨나 울분을 삼키는 스티브 잡스 같았다고나 할까? 그나마 잡스는 권토중래하여 과거의 영광을 넘어서는 영예를 생전에 볼 수 있었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도 아니 생후 오랫동안 패족취급을 받았다. 이런 그를 되살려준 벨과 같은 과학자들이 아니었다면 영영 잊힐 뻔했다. 책을 덮고 리뷰를 남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다 순간 뉴스창의 댓글을 보고 말았다. 수많은 넋두리와 비아냥거림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멀미가 났다. 잠시나마 우주의 신비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뉴턴의 우주는 우연의 가능성이 전혀 없이 완벽하게 결정론적이다. 그런 우주에서 입자는 언제나 명백한 운동량과 위치를 가진다. 입자에 작용하는 힘은 운동량과 위치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나 루트비히 볼츠만과 같은 물리학자들은 많은 수의 입자들로 구성된 기체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확률이었기 때문에 통계적 설명에 만족했다. 통계적 분석으로 후퇴한 것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움직임을 추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확률은 모든 것이 자연법칙에 따라서 벌어지는 결정론적 우주에서 인간의 무지에 따른 결과였다. 주어진 시스템界의 현재 상태와 그에 작용하는 힘이 알려져 있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고전물리학에서 결정론은 탯줄을 통해서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한다는 인과성과 단단하게 이어진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는 태양과 지구의 경우처럼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질량 중심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뉴턴 물리학에서 서로 접촉하지 않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신비스러운 “원격작용”의 힘이다.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은 큰 질량의 존재 때문에 생기는 공간의 휘어짐에 의해 나타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어떤 신비스럽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의 거대한 질량에 의해서 공간이 휘어지기wrap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물질은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고, 휘어진 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알려준다.


_만지트 쿠마르, <양자혁명> 가운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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