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이자 최악의 시절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_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가운데_


뉴욕 타임스를 보면 1면에 꾸준히 실리는 기사가 있다. 부고다. 곧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흔히 존경받을만한 사람만 실리지는 않는다. 천하의 악독한 독재자나 살인자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흔히 빼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은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명과 암을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는 죽은 자에 관대하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굳이 나쁘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마인드다. 부음도 단신으로만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발인날짜와 장례식장은 빼놓지 않으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으나 한 때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살았던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의미가 있다.


김정렴 선생이 돌아가셨다. 향년 96세, 누군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박정희 정권의 비서실장이었다. 그것도 9년 6개월이라는 최장수였다. 더욱 놀라운 건 그의 이전 경력도 만만치 않다.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마디로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경제통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을까? 그리고 거의 10년 가까이? 흔히 정치인이나 법조인을 앉히게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최고 지도자가 경제 관료를 보호하는데 누가 감히 그 명령을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기는 독재의 절정기였다. 요컨대 빛과 어두움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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