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가 사장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이 장점인 반면 늘 화가 많았다. 대표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그만두었다. 나중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었다.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다 발견했는데 이미 때나 늦었다. 분노가 먼저인지 아니면 병이 우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둘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후배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분노보다는 우울이 낫지.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잖아. 재택근무를 한 지도 두 달이 지나간다. 나름대로 일상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집에 있다고 해서 마냥 편안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시도때도없이 울리는 초인종. 쓰레기 버리기. 청소하기. 밥하기. 고장 난 가전제품 에이에스 신청하기. 별 것 아닌 일인 듯싶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면 짜증이 난다. 괜히 주부 우울증이 생기는 게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그저께 산 공적 마스크가 포장을 뜯어보니 불량이다. 바꾸러 가야 한다. 귀찮은 마음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약국에 간다. 교체한 후 재난기보소득을 문의하러 주민센터에 방문했다. 해당 날짜가 아니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그냥 신청하면 된단다. 다행이다. 잠깐 짬을 내 공원을 산책한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다, 이해가 간다. 나처럼 집안일을 하다 잠시나마 시간을 낸 거다. 그러나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오후 1시에 티브이 수리하러 사람이 오기 때문이다. 서둘러 집으로 행한다. 현관문을 열자 땀부터 난다. 뒤늦게 아침식사를 한다. 빵과 커피가 전부다. 그나마 언제 오실지 몰라 급하게 먹는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다 먹었는데 오지 않는다. 맥이 빠진다. 슬슬 화가 치민다. 동시에 우울하다. 아직도 하루가 끝나기에는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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