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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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베스트셀러하고 해서 사 놓고서는 표지만 보고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리는 책이 있다. 내게는 <문명의 충돌>이 그렇다. 왜 구입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까맣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를 보고는 당장 읽고 싶어졌다. 불면증으로 새벽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씨아이에이 요원. 알바는 그를 채근한다. 문 닫을 시간이라고. 손에는 책을 든 채. 헌팅턴이 쓴. 에바는 정치학 전공 학생에게 넌지시 충고한다. 문명은 문화에 의해 변화하고 충돌한다는 식으로 리포트를 써보라고. 


예언은 늘 헛되다. 맞으면 우연이고 틀리면 헛소리니까. 그럼에도 현명한 예측은 늘 필요하다. 비록 당장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본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서구 자유주의는 승승장구했다. 더 이상 이데올로기 갈등은 없을 것이라며 승리의 팡파르를 울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칠 줄을 모른다. 세계대전이 사라졌다고 해서 지역전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유가 뭘까? 인간 본성 때문에? 국가 간 자존심 문제로? 아니면 인종 간 갈등으로?


새뮤엘은 뜻밖의 이유를 댄다. 문화가 원흉이다. 여기서 문화는 단지 우리가 즐기는 여흥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을 형성하는 모든 문명의 결합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이면서도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인종, 민족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곳에서나 발생이 가능하다. 그 결과 말다툼으로 끝날 일이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코스보 사태가 그렇고 시리나 내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저자는 명백한 해결방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사이비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사회학자는 경향을 추적하고 그 기원을 밝히면 된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인류 공통의 문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코비드 19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어떤 한 지역이나 나라의 재난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앓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의 방식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가 잘 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기위해 모범사례를 찾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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