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부엉이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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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쓴 채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어슬렁어슬렁 왔다 갔다 걷는 듯 뛰고 있었다. 누군가 노란색 차에서 내려 어깨에 철조망 같은 것을 짊어 매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 했지만 길을 비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컨테이너 박스 뒤에 철망을 세워놓고 다시 자동차로 돌아갔다. 일요일 오후 3시였다. 대범한 범행 현장을 본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다가가 '저거 뭐예요? 당장 치우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거슬린 건 그의 행동이 아니라 철조망이 놓여지면서 바뀐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눈을 피해 그쪽을 보지 않으면 그 뿐이었다. 없는 셈치고.


<집에 있는 부엉이>는 짧은 이야기 모음이다. 이도우 작가가 라디오에서 이 책을 소개했다. 짧지만 강력하게. 꽤 로맨틱한 스토리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부엉이가 주인공이었다. 겨울바람을 초대했더니 온 집안이 얼음장이 되어 덜덜 떨다가 겨우 내보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침대에 누웠더니 두 혹이 튀어나와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어 아래층으로 내려와 의자에서 잠을 청하고, 슬픈 생각을 떠올리며 흘린 물로 짭짤한 차를 홀짝 마시고, 위층과 아래층을 오고가며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없는 자신에 절망하다 결국 계단 중간에 걸터앉고, 자신을 자꾸 쫓아오는 달이 신경 쓰여 계속 도망치다 간신히 제 방에 들어와 창밖에 비친 달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 것일까? 정신병자의 끄적거림인데. 아마도 보는 시각이 달랐겠지.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하나도 심심하지 않은 자신을 떠올렸을까? 그러나 그 상상력이 공포와 불안 때문이었다면. 살짝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혹시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시도해보았지만 여전히 꿈쩍을 하지 않는다. 그제야 문 위쪽을 보니 나사가 연결된 부위가 한껏 삐뚤어져 있다. 누군가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문이 내려앉은 것이다. 아무리 오래 집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공구를 가져와 억지로 문을 댕겨 최대한 열어 넣고 심하게 여닫는 바람에 삐뚤어져 박혀버린 나사를 빼느라 용을 썼다. 웬만하면 빠질 질 알았던 못은 꿈쩍도 하지 않고 어느새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린다. 오늘 안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순간 집에 있는 부엉이가 너무도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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