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라는 기억을 소환해 준 박하우스 전집. 어렵사리 구했기에 더 애착이 간다. 


잠을 줄여가며 클래시컬 음악을 듣던 시절 


가장 최근 설랬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 딱히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현재 같은 삶을 살았다. 먹고 자고 읽고 쓰고 듣고 일하고 쉬고 걷고 뛰고 춤추고 수영하는 나날이었다. 나름 충실한 하루하루였지만 솔직히 설레지는 않았다. 


설렘이란 뜻밖의 기대가 충족될 때 생긴다. 이를 테면 첫 눈에 반한 여성 혹은 남성과 어렵사리 첫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고 약속장소로 향할 때의 기분같다고나 할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소한 일에도 느낄 수 있다. 어제 내가 그랬다. 사고 깊은 음반이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품절이 되고 말았다. 재입고 되겠지하고 기다렸는데 아뿔싸 절판이란다. 곧 다시 판매할 계획이 없다는 소리다. 아마도 한 장 초판만 내놓은 모양이다. 어렵사리 중고물건이 나와 구매직전까지 갔는데 판매자의 변심으로 그만 중단. 이판사판 심정으로 웃돈을 7만 원이나 더 주로 해외직구를 하려고 뒤지는데 그마저도 취소. 그놈의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때문에. 


이쯤 되면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는데 우연히 구글을 검색하다 용산의 음반 판매점에 있단다. 확인해 보니 틀림없었다. 택배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기쁜 마음에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다. 순간 내 시계바늘은 거의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체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용산에 들렀다. 엘피판을 사기 위해서였다. 직장이 신촌이고 집이 인천이었으니 오고가는 데만 해도 벅찬데 그 와중에 음반가게 들어 음악도 듣고 판도 고르며 점원이 건네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그 때는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클래시컬 음악을 들었는데. 하도 오랜만이라 길이 헷갈릴 법도 한데 신용산 역에 내려 굴다리를 보자마다 옛 기억이 바로 떠올랐다. 얼마나 자주 오고갔는지 셀 수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예전에 가곤 했던 그 가게는 애써 찾지 않았다. 그대로 있든 사라졌던 추억은 추억일 뿐이니까. 


결국 음반을 구입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고이 모셔두고 있다. 언젠가 듣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할 생각이다. 왠지 포장을 벗기는 순간 설레는 발걸음의 여운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다. 이 기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첫 음반부터 들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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