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머리 앤을 만화로 혹은 책으로 추억하는 이들 모두에게 앤은 늘 사랑스러운 아이다.
삼가 신지식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 이야기뿐이라 다른 소식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분명 다른 일들도 복잡다단하게 돌아가고 있을 텐데. 오늘 (2020년 3월 18일) 아침 신문을 보다 신지식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향년 90세. 정직하게 말해 전혀 모르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빨강머리 앤을 처음 소개한 분이라는 내용을 보고 살짝 심장이 뛰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인터넷을 보니 추억에 젖는 이들도 많고 신문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전문 번역가는 아니다. 일어로 된 빨강머리 앤을 보고 우리말로 중역하여 신문에 실었다. 워낙 읽을거리가 귀하고 가난한 우리 사정에 딱 맞는 스토리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게 된 다음에도 앤을 찾는 손길을 줄어들지 않았다. 나 같은 세대는 책보다는 만화가 더 인기를 끌었다. 수다쟁이에 주근깨 가득한 앤은 발칙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예전에는 띄엄띄엄 보다 몇 년 전 마음먹고 전편을 다 감상한 적도 있다. 내친 김에 책 전집까지 구했다. 비록 1권만 다 읽은 상태지만. 참고로 만화의 내용은 1권이 전부다. 곧 고아로 입양되어 모교의 선생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희한한 건 우리나라에서만 앤의 인기가 높은 게 아니다. 원작자의 고향인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더 나아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빨강머리 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랑받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생은 힘들고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삼가 신지식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말
신지식 선생의 본래 직업은 작가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여 직접 번역까지 했지만 정직하게 말해 부끄러웠다고 한다. 직접 옮긴 것도 아니고 일본어 번역을 다시 중역했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고 저작권 개념조차 희미한 때였으니까. 참고로 내가 읽은 번역본은 김유경 옮김이다. 원서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앤의 특징인 수다를 매우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묘사하여 만족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