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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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은근히 자랑스럽게. 마치 창작의 원천인 것처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람은 무척 많다. 굳이 기억을 떠올려 좋을 일이 없기에 삭제한 것이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한 때 연인이었던. 동창회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유부녀이며 딸도 있다. 두 번 다시 눈길을 주면 안 되는 상대인데, 연락이 온다. 제발 내 부탁들 들어줘. 뭔가 불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뜻밖에도 이 둘은 기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고군분투할 때 쓴 책이다. 작가 식당을 개업했지만 그저 그런 성적으로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도 그 와중에 나왔다. 판매부수도 별로였고 평판도 낮았다. 냉정하게 말해 이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등장인물은 단 둘이고 구성은 평면적이며 설정도 그저 그렇다. 무엇보다 글 솜씨가 매우 초보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훗날 대성공을 거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초를 제공한다. 집을 소재로 그 안에 깃든 정서와 기억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 읽고 나서는 왜 첵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었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그래, 맞아, 이 집은 진짜 내가 죽었던 곳이지. 이 말이 궁금하시다면 참을성을 지니고 끝까지 읽으셔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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