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위선과 독선이 불러 온 옥중정치
옥중서신하면 언뜻 떠오르는 인물은 신영복이다. 민주화 물결을 타고 과거 독재정권에서 옥고를 치른 분들이 대거 출판시장에 등장하여 큰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비슷한 부류의 책들이 나와 한때 붐을 이루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류의 편지나 책이 주목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겨지다 갑자기 감옥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이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주인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탄핵이후 각종 죄목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지 약 3년 만이다. 그동안 간간이 소식은 전해왔지만 지금처럼 딱 맞는 타이밍에 옥중정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메시지도 구체적이다. 모든 야당은 보수대통합으로 단결하라. 물론 태극기 포함.
한편으론 현 정권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정치를 잘했다면 그가 다시 주목을 받지 못했을 텐데. 오죽 못했으면. 반면 박 전 대통령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구치소에 있다. 곧 아직까지는 형 확정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미결수다. 그렇다면 어떻게 형을 받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구치소에 있을 수 있지? 이명박 저 대통령처럼 불구속 처리하여 자택에서 오가며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역시 정치가 깊숙이 개입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편지 내용은 딱히 특별할 게 없다. 도리어 담담해 보인다. 그래서 더 의문이다.
진짜 자필이라면 그는 매우 온전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어쩌다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미스터리하다. 전문을 공개한다. 판단은 읽는 이의 몫이다.
국민 여러분 박근혜입니다.
먼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 수천명이나 되고 30여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4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앞으로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잘 견뎌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2006년 테러를 당한 이후 저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고, 그 삶은 이 나라에 바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탄핵과 구속으로 저의 정치 여정은 멈췄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우방국들과의 관계 악화는 나라 미래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에 구치소에 있으면서도 걱정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현 집권세력으로 인해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 염려도 있었습니다. 또한 현 정부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거대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울분이 터진다는 목소리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말 한 마디가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 침묵을 택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 장래가 염려돼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의 한숨과 눈물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나라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고 국민들의 삶이 고통 받는 현실 앞에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 같은 거대 야당의 모습에 실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수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라가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 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2020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