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 보았기 때문에 대사는 물론 나오는 음악은 죄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영화가 있다. 내겐 <그리스>가 그렇다. ‘텔미 모아’는 말 할 것도 없고 ‘산드라 디’는 아예 떼창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다 아는 척 했는데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음악이 있었다. 지난 주말(2020년 2월 29일) 티비엔의 <더블 캐스팅>을 보다 깜짝 놀랐다. 무닝이라는 곡 때문이었다. 앙상블 배우가 나와 능청맞게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어떤 뮤지컬이야 하고 찾아보니 아니 그리스. 설마 그럴 리가? 혹시 영화버전에는 없는가 찾아보았더니 세상에나 있었다. 대체 난 뭘 본 거지? 여하튼 끈적거리면서도 유쾌한 무닝은 멜로디로 좋지만 압권은 가사다. 할 일없는 방황하는 청춘이 하나의 장르가 된 대표적인 곡이다.
I spend my days just mooning,
So sad and blue,
So sad and blue I spend my nights just mooning,
All over you (all over who?)
Oh I'm so full of love, as any fool can see
'Cause ages up above, have hung the moon on me
(Why must you go) why must I go on mooning,
So all alone (so all alone)
There would be no (there would be no) more mooning,
If you would call me (I've found a phone)
While lying by myself in bed, I cry and give myself the red eye
Mooning over you I'll stay behind
(You'll stay behind) you…
우리말 가사는 섹시한 엉덩이를 까볼까 어쩌구 저쩌구로 희화하시키고 있는데, 사실 원래 가사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청춘의 고백이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하루 종일 바지를 까서 엉덩이를 보이는 행위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겠는가? 핵심은 궁둥이가 아니라 그 때의 심정이 슬프고 우울했다 이다. 마치 흑인들이 악기 살 돈이 없어 입으로 흉내 내며 부르던 힙합이 한국에서는 겉멋 들린 트렌드가 되어버렸듯이. 영어 가사도 어렵지 않아 그대로 실었다.
이 음반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리지널 맴버들이 참여한 앨범이다. 영화에서와 같은 매끄러움은 없지만 대신 현장의 생생함이 절로 전해진다. 물론 무닝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