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세우려거든 


줄서기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 제목이다. ‘질서를 잘 지키자’라는 흔한 주제였는데, 나는 삐딱하게 썼다. 왜 줄을 서야 하느냐. 버스 정류장을 예로 들어보자. 버스가 제 시간에 온다는 보장이 있다면 당연히 줄을 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무질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줄서기에 앞서 시스템 마련이 더 급한 과제다. 뭐 이런 식의 글이었다. 내 딴에는 스스로 감탄했는데, 상은 받지 못했다. '이상한 놈이네'라고 했겠지.


재택 근무 중 인터넷 동네 카페에 들어가 보니 농협에서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뭐 그런가보다 하고 잊어먹었다가 잠시 산보를 나간 김에 해당 시간이 되어 혹시 하고 가보았다. 역시 줄이 길었다. 그래도 포기할만한 상황은 아니라 부지런히 달려가 줄을 섰다. 서서히 줄이 줄어들면서 드디어 판매소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줄을 서기 잘했어. 한 사람당 다섯 장뿐이지만 그게 어디야. 이번 주 중에 시간되면 다시 와야지. 내심 흐뭇해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툼 소리가 들렸다. 


한 아주머니가 판매하는 분께 막 화를 내고 있었다. 속으로 아유 참 좀 참으시지, 다들 조용히 줄을 서고 있는데. 그런데 다툼하는 내용을 듣다 보니 그분의 잘못이 아니었다. 미리 번호표를 나누어주었단다. 엇,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농협 카드회원에게는 문자가 갔단다. 내용을 정리하면 판매 전에 이미 번호표를 나눠주었고, 곧 표 없이는 아무리 줄을 서도 살 수 없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다시 한 번 재차 물어보았지만 얄짤없단다.


그렇다면 내일은 언제 번호표를 나누어주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들도 잘 모른단다. 마스크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 수시로 공지가 바뀐다는 말씀. 제길, 그럼 내가 지금까지 뭔 짓을 한 거지. 분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해당 카페에 들어가 보니 오늘은 오전 10시 100매, 11시 100매, 오후 1시 30분 150매 분량의 번호표를 선착순으로 나누어주었단다. 문제는 첫날이라 번호표와 함께 마스크를 준 경우도 있고 번호표 없이도 떼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팔기도 했단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 때가 언제적인데 아직도 이런 식이냐. 정말 마스크 하나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분통터지게 하는 게 나라인가? 차라리 주민 센터에서 가구당 몇 개씩 한정해서 요일별로 동을 구분하여 주고 주민세에 추가부과하면 될 것을. 무료급식소도 아니고 번호표에 대기줄에 아후 정말 줄 서다가 바이러스 걸리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 하루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