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당장 마스크가 없으니까.
방역 마스크가 딱 두 개 남았다. 작년 봄 미세먼지가 하도 극성이라 대량으로 사두었는데 바닥이 난 것이다. 혹시 하는 마음에 동네 대형마트와 약국을 가봤지만 KF94 대형 마스크는 단 한개도 구할 수 없었다. 남은 건 소형이나 면 마스크가 전부였다. 분명히 지난주만 해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 쓰고 다니는 제품이 아니어서 망설인 게 실수였다.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 미국인들은 투자에 열광했다. 그야말로 개나 소나 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익률이 높았다. 당연히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자산가치도 급등했다. 그러나 버블은 언젠가 꺼지게 마련. 주가가 급전락하자 사람들은 그나마 은행에 넣어둔 돈을 찾기 위해 일시에 몰려들었다. 문제는 은행의 지급보증률이 매우 낮아 돈을 줄 수 없었다. 모두가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미국인들은 졸지에 주식도 잃고 돈도 날려버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세계 리더국가인 미국경제라는 배가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마스크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은 물론이고 가게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우물쭈물 하던 사람은 졸지에 마스크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호기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누군가는 대량으로 마스크를 구매하여 폭리를 노린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천 원짜리였던 것이 오천 원이 넘게 팔린다. 화가 난다. 그럼에도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당장 마스크가 없으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살롱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와인을 마시던 중산층은 미즈근한 스프 한 그릇을 얻어 먹기 위해 줄을 섰다. 그 길은 너무도 길고도 길어 새벽부터 나와도 못 얻어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인당 30매로 제한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대구의 한 대형아웃렛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사스 때도 메르스 사태 상황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대통령은 총력 대응이라는 말만 남발할 뿐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게 마스크며 가격통제를 통해 배급을 해서라도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미 대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초창기에 했던 정책임을 알지 못한다. 대공황의 시간은 점차 촉각을 다투며 다가오고 있다.